[🌳그늘] 사진의 물성
사진은 이제 모두의 삶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은 모두의 일상이 되었죠.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진이 마치 그 순간을 붙들어줄 수 있을 것처럼요.
요즘에야 데이터로 사진을 보관할 수 있다지만 과거의 우리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필름을 인화한 사진을 앨범에 정리하곤 했지요. 가령 90년대생인 저의 집 한편에는 아직도 어린 시절이 담긴 앨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던 이 종이 앨범은 아직도 버젓이 하나의 문구류로써 판매되고 있습니다. 인생네컷, 포토프린터의 유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스마트폰 갤러리에 쌓이는 사진 한 장은 하나의 데이터입니다. 사진이라는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은 각자마다 사뭇 다릅니다. 스마트폰 앨범에 고이 보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나온 사진을 골라 SNS에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화해 앨범에 정리하던 과거엔 우리 모두 사진을 종이로 생각했지만, 이제 사진은 데이터로써 인터넷을 유랑합니다. 사진은 우리에게 ‘만져지는 것’에서, ‘만질 수 없는 무언가’로 변모해버렸습니다.
이러한 디지털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아날로그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인생네컷 등의 즉석 사진이 그렇습니다. 즉석 사진은 즉각적으로 10장의 사진을 찍어 그중 일정 수의 컷만을 인화해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즉석 사진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진을 바로 인화하여 ‘만질 수 있다’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름카메라, 폴라로이드, 포토프린터 등의 인기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진의 물성’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사진을 인화한다는 것, 그것은 추억을 내 손으로 만지고, 편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찍고 쌓여가는 스마트폰 속 사진을 선택해 업로드 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꽤나 간편한 일이지만, 그 간편함 때문에 오히려 사진 한 장 한 장의 소중함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인화해서 잘 보이는 곳에 붙이거나, 앨범에 정리하거나, 다이어리를 꾸밀 때 사용하는 것은 그 기억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마음과도 같습니다.
현재는 책도, 정보도, 대화도, 그리고 사진도. 많은 것이 데이터화되고 있는 세상입니다. 데이터화된 사진은 우리에게 안전하다는 감각과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을 동시에 줍니다. 데이터망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잃어버려도 클라우드에서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드 서비스는 종료되면 사진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는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사진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추억과 기억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만져지는 것만이 곧 존재하는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만져지는 것은, 바래져 가는 것은 그래서 더 애틋한 것이 아닐까요.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